AI 에이전트 학습 회고
에이전트와의 대화는 적용될 때 지능이 된다
AI가 내 능력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업무와 생활에 적용하고 습관화할 때 지능 증강이 일어난다는 생각.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Augmenting Human Intellect」를 공부하면서, 에이전트를 앞으로 어떻게 써야 내 학습과 업무 역량을 실제로 높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Augmenting Human Intellect」를 처음 공부했다. 처음에는 지능 증강이라는 말을 꽤 단순하게 이해했다. AI가 인간의 수준을 높여주는 역할, 혹은 인간이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하고 대화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AI 자체가 내 수준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에이전트와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그 직후에 내가 바로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따로 있었다. 대화에서 얻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지금 하는 업무나 생활에 적용해보고, 그 과정을 반복해서 습관처럼 만들었을 때였다.
그래서 이번에 남은 생각은 조금 단순하다.
에이전트와의 대화는 출발점일 뿐이다. 지능 증강은 대화가 아니라, 그 대화가 실제 행동과 습관으로 바뀔 때 조금씩 일어난다.
대화 직후에는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에이전트와 대화한 직후에 내 수준이 올라갔다고 느낀 적은 없다.
물론 대화하는 순간에는 뭔가 정리된 느낌이 든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에이전트가 구조화해주고, 개념을 설명해주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관점을 덧붙여준다. 그래서 대화를 끝낼 때는 꽤 뿌듯하다.
그런데 그 상태를 지식이라고 부르기는 아직 애매한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에이전트와의 대화는 아직 지식이라기보다 임시 구조에 가깝다. 잠깐 세워둔 발판 같은 것이다. 그 위에 올라서면 멀리 보이지만, 내려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대화로 끝내면 금방 흐지부지되고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요즘은 학습 대화의 결과를 다르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학습 대화의 산출물은 요약문이 아니라 적용 후보여야 한다.
요약문도 필요하다. 하지만 요약문만 남으면 나는 그것을 읽고 “좋은 말이네” 하고 지나가기 쉽다. 반면 적용 후보는 조금 다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이 개념을 어떻게 대입해볼 수 있을지, 이번 주에 무엇을 다르게 해볼 수 있을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지까지 내려온다.
그때부터 대화는 조금씩 내 것이 된다.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용 후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용 후보의 난이도인 것 같다.
너무 쉬운 후보는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이미 하던 일을 이름만 바꿔 부르는 정도라면 학습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반대로 너무 어려운 후보도 잘 실행되지 않는다. “조직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같은 후보는 멋있지만, 지금의 내가 바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크다. 실행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결국 다시 요약문처럼 남는다.
그래서 좋은 적용 후보는 내가 봤을 때 실행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조금 부담은 되지만, 해볼 수는 있겠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에이전트와 학습 대화를 한다면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무엇인가요?
이 개념을 그 업무에 대입한다면 어떤 작은 실험을 해볼 수 있을까요?
업무에 바로 맞는 것이 없다면 생활 패턴, 취미, 관심 있는 영역에서는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없으면 학습 대화는 쉽게 지식 소비로 끝난다. 반대로 이 질문이 있으면 대화가 내 현실 쪽으로 내려온다.
나는 앞으로 에이전트가 단순히 설명을 잘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화 마지막에 내 업무를 물어보고, 그 업무에 개념을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지 후보를 같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엥겔바트의 개념이 다르게 보인 이유
엥겔바트는 지능 증강을 도구 하나의 효과로만 보지 않았다고 이해했다. 사람의 지적 능력은 도구만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 산출물, 방법론, 훈련이 함께 바뀔 때 증강된다는 식으로 읽혔다.
이 관점으로 내 에이전트 사용을 다시 보니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내 경우 에이전트는 산출물이자 도구, 그러니까 엥겔바트가 말한 artifact에 가깝다. 하지만 도구가 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에이전트와 대화하면서 낯선 개념을 내 말로 바꾸는 과정은 language에 가깝다. 남의 언어로 있던 개념을 내 설명 체계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그 개념을 현재 업무에 적용할 후보로 바꾸는 과정은 methodology에 가깝다. “좋은 개념”을 “지금 이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적용하고, 실패하고, 다시 고치고, 반복해서 습관화하는 과정은 training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AI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더 잘 이해된다. 에이전트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도구 하나를 사용하는 단계에 가깝다. 그것을 내 언어, 내 업무 방식, 내 학습 루틴으로 바꿔야 비로소 지능 증강에 가까워진다.
신입에게 어려운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이 생각은 회사에서 신입으로 일하는 지금의 상황과도 연결됐다.
나는 입사한 지 23~24일차 정도 됐다. 1일차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적응해야 할 것이 많다. 지금 맡은 업무는 마무리 단계라서, 특정 업무 자체에 새로 배운 개념을 크게 넣을 부분은 많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신입의 입장에서 보면 적용할 여지는 오히려 컸다.
회사의 소통 방식, 도구, 일하는 방법, 조직에서 자주 쓰는 언어를 천천히 익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기술을 모르는 것보다, 그 기술과 업무를 회사의 방식 안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움직여야 하는지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신입에게 어려운 건 기술보다 회사의 언어와 방법론을 내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기술적인 병목은 검색하거나 물어보거나 에이전트와 같이 풀어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 방식이 필요한지”,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회사의 맥락에 맞게 정리하는 일이다.
업무를 끝까지 마무리해본 경험이 아직 부족한 것도 병목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중간까지 이해하고 구현하는 것과, 마지막에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마무리하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이 지점에서 에이전트를 더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드를 대신 짜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회사의 언어와 방식을 내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도 써야 한다.
다음 업무에서는 먼저 큰그림을 잡고 싶다
다음 업무에서는 바로 실행부터 들어가지 않고, 먼저 큰그림을 정리한 뒤 진행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한 틀은 아직 거칠지만 이런 순서다.
- 문제점
- 그래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 이것을 조직에 도입하거나 설득하는 방법
- 마지막에 수치나 성과를 체크할 수 있는 무언가
- 이 과정을 반복 개선할 수 있는 루프
여기서 성과는 꼭 숫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물, 피드백, 줄어든 혼란, 반복했을 때 개선된 점도 확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틀은 다음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에이전트와 먼저 대화해보기 좋은 질문 목록이기도 하다. 바로 구현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어떤 흐름으로 움직일지 먼저 꺼내놓는 것이다.
이 템플릿을 놓고 보면 내가 가장 약하다고 느끼는 항목은 “조직에 도입하거나 설득하는 방법”이다.
주도적으로 조직에 무언가를 도입하거나 설득하는 경험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신입에게는 더 어렵다. 그래서 지금 당장 거창한 제안서나 조직 단위의 변화를 목표로 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수준의 훈련이 있다.
먼저 다른 분들이 어떻게 해오셨는지 히스토리를 본다. 왜 지금의 방식이 생겼는지 파악한다. 그다음 내 머릿속에서 “내가 바꾼다면 어떻게 설명할까?”를 작게 시뮬레이션한다. 그리고 동료들과 가볍게 이야기해보며 내가 이해한 방향이 너무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신입 단계의 설득 훈련은 큰 제안서가 아니라 기존 맥락 파악, 개인적 시뮬레이션, 가벼운 동료 검증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지금의 나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루프를 반복하는 것이, 나에게는 엥겔바트가 말한 training에 더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에이전트를 뇌를 2배로 쓰는 느낌으로 활용하기
앞으로는 에이전트를 나의 역량을 높이는 데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지금도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조금 더 넓은 방향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질문하고 답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맥락을 최대한 공유하면서 뇌를 2배로 쓰는 느낌으로 활용하고 싶다.
물론 이 표현은 감각적인 비유다. 실제로 뇌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생각과 맥락을 외부화하고 싶다는 뜻이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흐릿한 생각을 에이전트와의 대화 위에 꺼내놓고, 같이 구조화하고, 검토하고, 반박하고, 적용해보고 싶다.
혼자서는 놓칠 수 있는 사고 과정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때 에이전트는 순응형 비서가 아니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무조건 좋다고 하거나, 그럴듯한 답만 주는 도구라면 한계가 있다.
에이전트는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내 생각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잡아주는 선생님이자 사고 도구여야 한다.
때로는 “그 방향은 지금 맥락과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때로는 “이 생각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너무 크니 더 작은 후보로 낮춰보자”고 말해줘야 한다. 때로는 “지금은 요약보다 적용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대화를 끌고 가줘야 한다.
그래야 에이전트와의 대화가 답변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답변기가 아니라 훈련 시스템으로
이번에 엥겔바트의 글을 공부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거창하지 않다.
AI가 내 능력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에이전트와 대화했다고 해서 바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에이전트와의 대화를 내 업무와 생활에 적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습관화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화는 임시 구조가 되고, 적용 후보는 작은 실험이 되고, 반복은 훈련이 된다. 그 과정에서 개념은 내 언어로 바뀌고, 업무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앞으로 에이전트를 답변기가 아니라 내 사고와 업무 방식을 훈련시키는 시스템으로 쓰고 싶다.
좋은 답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좋은 적용 후보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후보를 실제 업무와 생활 속에서 반복해보고 싶다.
앞으로 학습 대화를 마칠 때는 마지막에 한 번 더 물어보려 한다. “그래서 이걸 지금 내 일에 어떻게 넣어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있어야 대화가 내 삶 쪽으로 넘어온다.
지능 증강은 아마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AI가 나를 갑자기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AI와 나눈 대화를 내가 어떻게 내 현실로 가져오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