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기록
AI 에이전트 시대, 학습 매체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책과 문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읽고 지나가는 학습에서, 생각하고 피드백받는 학습으로 넘어가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Andy Matuschak의 Why books don't work를 스터디하면서 책과 문서의 한계, 그리고 AI 에이전트 시대의 학습 매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요즘 회사에서 Andy Matuschak의 Why books don't work를 같이 살펴보고 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책이라는 매체 자체를 비판하는 글인가 싶었다.
그런데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지점은 책의 생존 여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학습 매체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그동안 교육 매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았다. 책은 책이고, 문서는 문서이고, 강의는 강의라고 생각했다. 좋은 내용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면, 읽는 사람이 알아서 배우는 것이라고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서 조금 멈칫하게 됐다. 정말 좋은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 사람은 배우는 걸까?
책과 문서는 아직 필요하다
물론 책이나 문서가 필요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종종 읽는다. 디지털 변화가 오래 이어졌지만, 종이책 시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나도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읽을 때 더 집중이 잘 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화면을 넘기며 읽는 것과 손에 책을 잡고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일은 이상하게 다르다.
종이책에는 정보 전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손에 잡히는 물성,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어쩌면 주변에서 보기에도 “공부하고 있다”는 사회적인 신호 같은 것들까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문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기본적인 것들은 문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기본 개념, 기본 사용법, 반복되는 오류, 자주 나오는 실수 패턴 같은 것들은 한 번 잘 정리해두면 여러 사람에게 계속 도움이 된다.
특히 회사 안에서는 이런 지식이 문서로 남아 있지 않으면 같은 설명이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책은 안 된다”거나 “문서는 끝났다”는 식의 결론에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읽고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다만 문서만으로는 부족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특히 어떤 내용을 자기 상황에 적용해야 하는 순간부터 그렇다.
말로 설명을 들을 때는 이해한 것 같은데, 막상 내 업무에 대입하려고 하면 손이 멈추는 경우가 있다. 문서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중에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종이책을 읽을 때조차 그렇다. 정말 생각을 깊게 했다기보다, 눈으로만 훑고 지나간 순간들이 있다.
여기서 AI 에이전트가 학습 매체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느꼈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더 많은 설명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좋은 학습 에이전트라면 “이 개념은 이런 뜻입니다”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럼 당신의 언어로 다시 설명해보세요”라고 묻고, 내가 설명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같이 확인해야 한다.
자기 언어로 설명해보는 일
나는 이 과정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개념을 자신만의 언어로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이해가 맞든 틀리든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정립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다음에는 내용적인 피드백을 통해 그 이해가 실제 개념과 맞는지 확인하면 된다. 반대로 설명하다가 자꾸 막힌다면, 그 지점이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은 부분이다.
기존의 책이나 문서는 이 과정을 독자에게 맡겨두는 경우가 많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책도 있고, 연습문제를 제공하는 문서도 있다. 하지만 독자의 답변을 보고 다음 질문을 바꾸거나, 그 사람의 업무 맥락에 맞게 피드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이론적으로 그 지점을 채울 수 있다. 문서가 기본 지식과 반복 패턴을 담는 저장소라면, 에이전트는 그 지식을 개인의 상황에 맞게 꺼내주는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다.
교육은 더 긴 설명보다 좋은 질문이 필요할 수 있다
이 생각은 회사에서 교육을 설계할 때도 연결된다. 예를 들어 “AI 에이전트를 업무 파트너처럼 활용하면 좋다”고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정작 자기 업무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긴 설명이 아니라, 직접 자기 업무를 꺼내보게 만드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파악 중인 업무는 무엇인가요?
이 업무에서 아직 헷갈리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방금 설명한 개념을 당신의 상황에 대입하면 어디에 해당하나요?
이 내용을 당신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집중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학습자가 자기 안에 있는 이해를 밖으로 꺼내게 만드는 장치다.
꺼내놓아야 확인할 수 있고, 확인해야 피드백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AI 에이전트 시대의 좋은 교육 매체는 설명을 잘 담아둔 자료를 넘어, 생각을 강제로라도 발생시키는 환경에 가까워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도 AI가 모든 교육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교육하는 사람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교사든, 회사의 시니어든, 온보딩을 맡은 사람이든,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무엇을 설명할 것인가”만큼이나 “어떤 질문을 통해 상대가 자기 생각을 꺼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읽고 끝나는 매체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매체로
결국 내가 이번 스터디를 하며 남긴 생각은 단순하다. 책과 문서는 여전히 필요하다. 기본적인 것들, 패턴화된 오류, 반복해서 참고해야 하는 기준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다만 AI 에이전트 시대의 학습은 거기서 끝나면 아쉽다. 좋은 설명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내 언어로 설명해보고, 막히는 부분을 드러내고, 내 상황에 맞게 다시 피드백받는 과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학습 매체가 바뀐다는 것은 아마 종이책이 사라진다거나 문서가 필요 없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문서, 책, 강의 같은 기존 매체 위에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붙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읽고 끝나는 매체에서,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말하게 만들고 피드백받게 만드는 매체로.
그런 관점에서 AI 에이전트를 단순한 답변기가 아니라 학습 에이전트로 바라보면, 앞으로 해볼 수 있는 교육 방식이 꽤 많아질 것 같다. 그리고 좋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변화는 꽤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