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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다시 생각한 일하는 방식

경력보다 학습이 실력을 만든다는 말

개인의 의도적 수련, 팀의 협업, 애자일한 업무 방식은 결국 하나의 학습 구조로 이어진다는 생각.

김창준의 『함께 자라기』를 공부하며, 개인의 성장은 피드백을 통해 더 선명해지고 협업은 그 학습을 팀의 판단으로 넓히며 애자일은 이 과정을 실제 업무 안에서 반복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정리했다.

최근 김창준의 『함께 자라기』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애자일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스크럼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회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개발팀은 어떤 도구를 쓰면 좋은지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이 말하는 애자일은 그런 형식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개인은 어떻게 계속 성장하는가. 팀은 어떻게 서로의 판단을 더 좋게 만드는가. 불확실한 일을 할 때는 어떻게 계획을 고치며 앞으로 나아가는가.

책은 이 세 가지를 각각 자라기, 함께, 애자일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였지만, 읽고 나니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더 잘 배우고, 그 배움을 서로 나누고, 업무 안에서 작은 실행과 피드백을 반복하는 것.

내가 『함께 자라기』에서 이해한 애자일은 결국 이것에 가까웠다.

경력이 쌓인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책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경력과 실력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오래 일하면 경험이 늘어난다. 하지만 경험이 늘어난다고 해서 자동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결과만 내고, 다음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경력은 쌓여도 기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책은 실무에서 일어나는 학습을 야생학습이라고 설명한다. 학교에서 하는 학습에는 범위와 순서, 정답과 평가 기준이 어느 정도 있다. 반면 실제 업무에서는 목표가 바뀌고, 정답이 없고, 여러 사람의 맥락과 제약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무엇을 배울지뿐 아니라 어떻게 배울지를 배워야 한다.

여기서 의도적 수련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의도적 수련은 단순히 오래 연습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어려운 일을 해보고, 빠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고, 실수를 고친 뒤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 가깝다. 너무 쉬우면 늘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피하게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높은 난이도에서, 실패를 확인하고 조정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일을 잘 끝내는 것과 일을 통해 배우는 것이 다른 질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업무를 잘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실행 프레임에 가깝다. 반면 이번 일을 하면서 다음번에 더 잘할 방법까지 남기는 것은 학습 프레임에 가깝다.

둘 중 하나만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과를 내되, 그 과정에서 다음 실행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A, B, C의 구조도 이 생각을 잘 보여준다.

문서를 작성하는 일만 하는 것이 A라면, 다음에도 쓸 수 있는 문서 템플릿을 만드는 일은 B가 될 수 있다. 그 템플릿을 계속 개선할 수 있도록 회고와 피드백의 방식을 만드는 일은 C가 될 수 있다.

당장의 산출물만 남기지 않고, 다음 업무의 속도와 품질을 함께 높이는 무언가를 남기는 일. 자기계발이 복리로 돌아온다는 말은 이런 뜻에 더 가까웠다.

협업은 일을 나누는 것보다 판단을 나누는 일이다

책의 두 번째 주제는 함께다.

여기서도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시 보게 됐다. 보통 협업이라고 하면 일을 나누고, 각자 맡은 부분을 끝낸 뒤, 결과를 연결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책은 분업과 협업을 구분한다.

분업은 일을 나누는 일이다. 협업은 서로 다른 정보와 관점이 만나, 혼자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더 나은 판단을 만드는 일이다.

이 차이는 꽤 크다.

각자 맡은 일을 잘 끝내고 결과만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프로젝트는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어떤 선택지를 고민했는지, 무엇이 아직 불확실한지까지 공유되지 않으면 팀은 결과물을 이어 붙이는 데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서나 구현의 큰 그림을 공유하면, 다른 사람은 결과물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보지 못한 제약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선택지를 제안할 수도 있다.

책에서 말하는 신뢰와 심리적 안전도 이 지점에서 실무적으로 이해됐다.

신뢰가 있다는 것은 단지 분위기가 편하다는 뜻이 아니다. 실수 가능성,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 불확실한 우려를 말할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 그래야 문제가 커지기 전에 드러나고, 개인이 가진 정보가 팀의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완성안을 가져가는 것보다 여러 대안과 가설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남았다.

완성도 높은 안 하나만 가져가면 대화가 ‘이 안을 승인할 것인가’로 흐르기 쉽다. 반면 빠르게 출시하는 안, 범위를 줄여 먼저 검증하는 안, 기술 부채를 먼저 정리하는 안처럼 선택지를 함께 놓으면 대화의 질문이 달라진다.

내 안이 맞는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은 무엇인지 함께 보게 된다.

애자일은 계획을 버리는 방식이 아니다

세 번째 주제는 애자일이다.

애자일을 빠르게 일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면 조금 헷갈릴 수 있다. 짧은 기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거나,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애자일이 계획을 포기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계획이 틀렸을 때 고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느꼈다.

목표와 해결 방법, 사용자 반응이 처음부터 명확한 일이라면 앞에서 길게 계획하는 방식도 잘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IT 제품이나 운영 방식처럼 일을 진행하는 중에도 요구사항과 맥락이 달라지는 일은 다르다. 처음에 세운 계획이 끝까지 맞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애자일은 일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고, 작은 가치라도 일찍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 다음 결정을 조정하려 한다.

여기서 가치는 꼭 완성된 기능일 필요가 없다. 사용자가 판단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 문서의 구조, 정책 초안, 데모, 운영 시나리오도 충분히 다음 대화를 시작하게 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완벽한 계획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계획이 틀렸을 때 빨리 알아차리고 고칠 수 있으면, 불확실한 일도 조금 더 잘 다룰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애자일은 속도 자체보다 학습 주기를 짧게 만드는 운영 방식에 가깝다. 고객이나 이해관계자에게 작은 결과를 자주 보여주고, 추측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배운 것을 다음 실행에 바로 반영하는 일이다.

준비를 잘하는 것과 함께 배우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 일하는 방식도 조금 돌아보게 됐다.

예전보다 문서나 구현을 조금 더 빨리 꺼내고, 의견을 들은 뒤 수정하는 일은 늘고 있다. 혼자 오래 붙잡고 완성도를 높인 뒤에 보여주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형태가 생겼을 때 공유하고 방향을 맞추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만 실제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거나,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다룰 때는 다시 속도가 느려질 때가 있다. 충분히 준비돼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고, 조금 더 정리한 다음에야 의견을 구해야 할 것 같아진다.

이 마음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향이 크고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에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모든 일을 같은 수준의 준비가 필요한 일처럼 다루면, 작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늦게 확인하게 될 수 있다. 준비의 기준을 혼자 세우고 혼자 통과하려고 할수록 피드백은 뒤로 밀린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준비를 덜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행을 해본 경험을 더 쌓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진행 중인 업무에서 문서를 조금 더 정리하거나 구현을 조금 더 진행한 뒤, 팀원들과 상의할 수 있는 지점을 더 일찍 찾는 것. 한 번의 완성안을 내놓기보다 큰 그림과 몇 가지 선택지를 보여주고, 의견을 종합해 다음 판단을 다듬어 보는 것.

아주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준비해도 되는지에 대한 감각도 조금씩 생길 것 같다.

함께 자란다는 것

『함께 자라기』는 개인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개인의 학습은 피드백을 통해 더 선명해지고, 협업은 그 학습을 팀의 판단으로 넓힌다. 애자일은 그 과정이 한 번의 회고로 끝나지 않고 실제 업무 안에서 반복되게 만든다.

그래서 자라기, 함께, 애자일은 따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조금 어려운 일을 해보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적절한 시점에 공유하고, 작은 실행에서 얻은 피드백을 다음 결정에 반영하는 것.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질 때 개인의 학습도 팀의 성과도 같이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일을 시작할 때 ‘이걸 얼마나 완성도 있게 준비해야 할까’만 묻기보다, ‘이 일에서 작게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 팀의 판단을 빌리면 좋을까’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완벽하게 준비한 뒤에 움직이는 것보다, 준비와 실행과 피드백을 연결하면서 조금씩 더 잘하는 쪽으로 가보고 싶다.